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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의 역사와 제3공화국의 원인

by 마니챌린지 2023. 2. 14.

이승만 정권은 개헌을 반복하며 집권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3.15 부정선거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4.19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이에 이승만은 매카나기의 이야기를 듣고 이후 하와이로 망명[8]하게 되고 장면을 행정부 수반 총리, 윤보선을 군통수권자 대통령으로 4.19혁명 정신을 이어받은 제2공화국이 세워지게 된다. 그러나 2공화국은 대통령과 총리간의 알력이 심했고 같은 정당 내에서 계파간의 갈등이 심각하여 10개월 만에 개각을 세번이나 단행하는 등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4.19의 여파로 정치 및 언론자유가 대폭 신장되는 긍정적인 변화는 극심한 사회혼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국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5.16 군사정변으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렸다.


이때는 제국주의를 야기한 선진 열강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체제의 차이를 떠나 종속이론에 입각해 항구를 봉쇄해 원료부터 제품생산까지 자립공업을 일으키고 국영기업을 육성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시기였는데 이전의 실패에 교훈을 얻어 1964년에 이전까지 하던 계획을 뜯어고치는 당시 후진국의 대세와 정반대인 약한 산업은 관세와 정부의 보조금으로 충당해주고 일정한 단계가 달성되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수출주도 산업화로 방향을 틀었다.

3년간의 군정을 통해 정치 기반을 다진 박정희는 정치자금을 받아서 선거를 준비하였고 상대의 종북몰이를 역으로 이용, 전라도와 경상도 농민들의 표를 받아 마침내 1963년 12월 국민 선거를 통해 5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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